월드컵 끝난게 어제다 싶었더니 2003년이 되었고 어느새 5월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살고있는 산본으로 이사온지가 어언 10년.
중 2 봄에 이 곳으로 이사를 왔으니 햇수로만 만 10년이다.
이사 오던 날을 어젯 일처럼 기억한다.
아스팔트를 깔은 지도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길로 차를 타고 들어가면
역시 칠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선명한 색깔의 아파트 동 건물들이
꼭대기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역사상가가 없어 기둥역할을 하는 지지 구조물 위에 세워져 건물
4층정도의 높이에 서 있는 모습만 보이던 산본역은 외국 동화에서
나오는 나무 위에 지은 집을 연상시켰고 이런 것을 지하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내부는 아직 정리조차 덜 돼 가로수는 흙덩이와 함께 새끼줄에
감긴 뿌리를 드러내고 길 가에 줄지어 놓여 있고,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이 아직 깔리지 않은 맨 흙바닥을 "수백 대" - 이 표현이
제일 적절할 듯 싶다 - 의 이삿짐 운반 차량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다닌다. 각 단지의 입구에는 단지별 전입 신고를 받기 위해
동사무소에서 설치한 천막 앞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다시 그 옆으론 그 몇 배 이상의 사람들이 땀을 쏟으며 이삿짐을
나른다.
저 멀리 언덕너머로는 아직 다 짓지 못한 단지의 건물들과 크레인이
보이는 황량한 풍경과 그 반대 방향으로는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봉우리들이 주는 전원적인 풍경의 이질감이 그 사이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묘하게 어우러진, 마치 서부
개척시대의 개척민 마을같은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산본은
"신도시" 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곳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또 들어와 최초 입주자들만의 도시는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나 선명한 기억에서 퍼뜩 정신을 차려 보면 이 기억들은 그저
10년 전의 일들일 뿐이고 소년은 어른이 되어버렸다.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만으로 5년이 넘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를 느끼며 옛 사람의
말씀이 정말 틀린 것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무상한 세월에 문득
서러움을 느낀다.
少年易老 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소년이로 학난성
一寸光陰 不可輕 (순간 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일촌광음 불가경
未覺池塘 春草夢 (연못가의 봄 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미각지당 춘초몽
階前梧葉 已秋聲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
계전오엽 이추성
...소년은 정말 늙기 쉽다...
|